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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재난뉴스 객원 칼럼니스트
전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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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는 무수히 많은 민족이 있고 이 민족은 저마다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각 민족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문화는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것이 문화상대주의의 기본이다. 즉, 모든 문화는 각자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문화를 기준으로 타 문화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시절 서구는 비서구 사회의 문화를 미개하거나 열등한 것으로 취급했다. 그리고 이러 비서구사회의 문화는 서구사회의 문화로 진보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류학자들은 오히려 이 비서구사회의 문화적 가치에 주목했다. 진보한 것이라고 생각한 서구사회의 문화가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반면 비서구사회의 문화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에스키모의 노래싸움이다.
에스키모 사회에도 갈등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서구사회와 달리 에스키모 사회에는 갈등을 판단할 근대적 법률이나 잘잘못을 가리는 법원, 그리고 범죄자를 수사하는 수사기관이 없었다. 서구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에스키모 사회에는 갈등이 일어나면 그것을 중재하거나 해결할 제도가 없기 때문에 갈등은 곧 폭력으로 비화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에스키모는 무수히 많은 갈등에도 불구하고 갈등이 폭력으로 비화하지 않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됐다. 그 이유는 노래 싸움 때문이었다.
에스키모인 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피해를 받거나 심리적 상처를 받으면 그 사람 집에 찾아가 노래를 부른다. 노래 가사는 자기가 피해를 본 내용과 피해를 입은 과정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중심으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다. 노래를 부르면 마을 사람들이 와서 노래를 듣고 함께 따라 부른다. 곧 즐거운 노래판이 만들어진다. 다음 날에는 노래를 통해 공격을 받은 사람이 노래를 부른 사람 집을 찾아가 자기도 노래를 부른다. 노래 가사는 어제 들은 내용에 대한 반론과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다. 이번에도 마을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 주변에 몰려들어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상대방을 비난한다. 다시 즐거운 노래판이 만들어진다. 노래 싸움이 계속되면 당사자들은 자기의 사정과 마음을 노래 가사에 담아 표현하며 마을 사람들은 함께 그 노래를 부르면서 노래 부르는 사람에게 공감을 표하고 응원을 보내게 된다. 몇 차례 노래 싸움이 진행되면 갈등의 당사자들은 마음의 위안을 얻고 상대방에 대한 원한을 지우게 된다. 자기 형편과 마음을 노래 가사에 담아 충분히 표현했고, 마을 사람들도 자기에게 공감해 주었기 때문이다.
잘잘못을 따질 법률도 없고 당사자 사이에서 심판관 역할을 하는 판사가 없어도 노래 싸움은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는 기능을 한다. 정작 법률과 재판관이 있는 서구사회 그리고 한국사회는 갈등 조절에 너무 취약하다. 재판이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재판을 한 판사는 당사자들로부터 원한을 받는다. 재판관은 중립을 지켰다고 주장하지만 당사자들은 자기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법률 적용을 불공정하게 했다고 비난한다. 그리고 법률을 해석하는 권리가 법관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상 권리인지 내란죄인지는 헌법재판소에서 판단할 일이지만, 이와 별도로 국민 각자가 이미 자기 나름의 판단을 가지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어떤 판단을 하든 이미 국민 절반의 지지와 절반의 분노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차라리 노래 싸움을 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각자 자기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고 국민의 공감대를 얻는 열린 축제를 번갈아 하면 상대방의 주장과 논리에도 마음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축제가 반복되면 설명하는 논리도 고갈될 것이고 참여하는 군중들도 열기를 유지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이후에 헌법재판소나 법원이 법리적 판단을 하면 그 결과가 더 폭넓게 수용될 수 있지 않을까? 현직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후 법원이 군중에 의해 폭력적으로 침탈당하는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원본: https://www.h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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