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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 후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휴대폰 번호로 걸려온지라 업체 사람이겠거니 생각하며 별 의심 없이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사무관으로, 등기를 보냈는데 반송돼 내일 수령할 수 있냐고 물어왔다. 낮 시간 동안 배송되면 수령이 힘들다고 말했고 그럼 해당 문서를 인터넷 사이트로 열람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며 특정 사이트로 들어가게 했다. 간단한 정보를 입력하니 법원 서류가 나왔다. 첫 장엔 사건번호, 두 번째 장엔 구속영장, 마지막장은 통장내역 스캔본이었다. 각 서류들엔 검찰청 직인과 더불어 사건 담당자들의 직인이 여럿 찍혀 있었다.

그의 말의 요지는 성범죄 일당의 대포통장 리스트 중 필자 명의로 된 통장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해당 은행으로 개설된 통장이 없는데 말이다. 혹시 2019년 즈음 지갑이나 휴대폰을 잃어버린 적이 있냐고 물어보는데 워낙에 물건을 수도 없이 많이 잃어버리는지라 그렇다고 했다. 이에 원래는 구속수사를 진행해야 하나 대다수의 공범자와는 달리 여러 조건으로 인해 도주 우려가 적다는 이유로 우선 약식으로 진행한다고 전했다. 이어 가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으로 금일 중으로 출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일내로 금감원에 출석하지 않을 경우 구속수사를 통해 진행된다고 덧붙였다.

여기엔 조건이 있었다. 이 일을 가족을 포함한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 것.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기에 필자가 누군가와 접촉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도피 및 범인 은닉으로 보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럴듯한 이유다. 더욱이 제3자에게 말할 경우 해당 사실은 굉장히 빠르게 소문을 타고 퍼져 다른 공범자를 놓칠 수 있기에 엠바고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을 기회가 있어 근처 파출소에 가서 물어봤다. 내가 금감원으로의 출석 명령을 받았는데 이게 진짜인지 보이스피싱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고. 순경 분들이 우르르 오시더니 돈을 보냈냐고, 파일을 깔았냐고 물어보셨다. 돈은 보내지 않았고 이상한 파일을 깔지 않은 것도 확인했다. 상황 설명차 앞서 서술한 내용의 앞부분을 진술하자 바로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이라며 최근에 그런 건으로 신고가 여럿 접수되었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마음을 쓸어내렸다. 딱 필자의 나이 대 사람들에게 이런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고 한다. 사회생활 경험이 얼마 되지 않는, 공문을 접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기에 타깃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외부사람과 접촉하지 말라는 것도, 공문을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는 것도 이상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는데 이따금씩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를 접할 때면 어르신들에게나 통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경험해보니 아주 호락호락하게 볼 일이 아니었다.

이들의 논리가 충분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는 생각이 한 순간 들면 보이스피싱으로 휘말릴 수 있다. 매번 바뀌는 수법에 모두 완벽히 대응할 순 없겠지만 보이스피싱 예방책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막연히 접했던 보이스피싱 예방 내용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닌 실제 내 사례에 적용시킬 수 있을 정도의 상식을 갖춰야 한다.

“늘 의심하고, 일단 전화를 끊고, 또 확인하고”. 보이스피싱의 행동수칙에 해당되는 문장이다. 공문은 실물로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하기에 링크 접속을 요구할 경우 의심을 해야 한다. 전화통화가 길어진다면 끊을 기회를 엿보자. 끊는다고 일이 발생하진 않는다. 확인할 지혜가 내게 없다면 경찰서에 가자. 친절하게, 명쾌하게 응답을 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은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늘 의심하고, 꼭 전화끊고, 또 확인하고”, ‘늘, 꼭, 또’를 기억하자.

원본:https://www.h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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