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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7일 오전 7시경, 태안 앞바다에서 정박 중이던 유조선에 삼성중공업 소속 해양 크레인이 충돌하면서 대규모 원유 유출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사고는 한국에서 일어난 최대의 원유 유출 사고로서 해양 오염과 양식장 파괴라는 처참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 사고 역시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로서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다.

▲사진_만리포 해안가에서 해양경찰과 인근 주민들이 유흡착포를 이용해 방제작업을 하고 있다 / 해양경찰청

 

 

사고를 일으킨 해상 크레인은 삼성중공업 소유로서 인천대교 공사에 투입되었다. 공사를 마친 크레인은 사고 전날인 12월 6일 14시 50분에 인천대교 부근을 출발하여 거제로 철수될 예정이었다. 해상 크레인은 1만 2천 톤급의 대형 크레인이었으며 무동력선이기 때문에 예인선 2척이 와이어로 연결하여 끌고 갔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 3시, 서해안에 풍랑주의보가 발령되었다. 예인선으로 끌고 가는 대형 크레인은 풍랑에 취약하기 때문에 즉각 대피했어야 하지만 예인선은 항해를 계속했다. 풍랑주의보 발령 1시간 뒤 해상 크레인은 예정항로를 이탈하여 남동 방향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뒤늦게 예인선은 인천항으로 회항을 시도하였으나 이마저 여의치 않았고 결국 높은 파도와 바람으로 예인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항만당국은 예인선단의 운항이 의심스러워 5시 30분경 예인선을 호출하였으나 응답이 없었고, 3km정도 떨어져 정박중이던 홍콩 선적의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호에서도 예인선을 호출하였으나 응답이 없었다. 6시 30분경에는 예인선 한 척의 와이어가 절단되어 해상 크레인은 통제력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고 결국 허베이 스피릿호와 충돌하고 말았다.

▲사진_원유 유출 사고를 일으킨 허베이 스프리트 호

 

 

해상 크레인과의 충돌로 허베이 스피릿호에는 3개의 구멍이 뚫리게 되었고 곧바로 원유가 유출되기 시작하였다. 허베이 스피릿호에서는 충돌 부위를 긴급 보수 했어야 하지만 높은 파도와 풍랑으로 적극적인 대처가 없었다. 또한 초기 방제에도 소극적이었다. 순식간에 12,500 리터의 원유가 유출되었고 높은 파도와 풍랑으로 유출된 기름의 확산속도가 높아졌다.

유출된 원유는 태안반도로 밀려와 태안군과 서산시의 양식장 약 8,000ha를 오염시켰다. 양식 중이던 어류와 조개류가 폐사하여 어민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뿐만 아니라 해양 오염으로 그 뒤에도 수년간 양식업은 물론이고 조개류를 채취하는 것마저 중단되었다. 태안반도의 북쪽 가로림만에서 남쪽의 안면도까지 해안은 기름띠로 오염되어 버렸다.

▲사진_해양경찰이 사고현장에서 방제작업을 하고 있다 / 해양경찰청

 

 

 

사고 이후 기름띠를 제거하는 일에 전국민이 참여하였다. 연인원 100만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주말마다 태안반도를 찾아 해안의 기름띠를 제거하였다. 군인, 대학생은 물론이고 동호회, 부녀회, 교회를 비롯한 종교단체 등이 자원봉사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기름띠를 제거하기 위해 필수적인 보호장비나 부직포의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보호복도 입지 못한 상태에서 기름띠를 제거하기도 하고 부직포가 모자라 옷으로 기름을 제거하기도 하였다. 기름띠 제거 작업에는 2달 이상이 걸렸으며, 태안반도에서 다시 양식업이 시작된 것은 사고 이후 7년이 지나서였다.

▲사진_태안 기름 유출 현장 자원 봉사

 

 

그러나 이 사고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하였다. 언론은 자원봉사자들의 봉사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함으로써 사고의 원인 제공자와 책임자에 대한 보도는 상대적으로 등한시하였다. 사고를 일으킨 해상 크레인이 삼성중공업 소유였지만 삼성중공업은 사고 초기 책임 회피에 급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사고의 명칭도 삼성중공업이나 헤베이 스피릿호의 이름 대신 태안이라는 지명이 사용되었다. 법률상으로는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오염 사고’이지만 여전히 이 사고는 ‘태안 기름 유출사고’로 일컬어지고 있다.

허베이 스피리트호 유류오염 사고 역시 안전에 대한 인식이 조금만 강조되었으면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출항 다음날 풍랑주의보가 발령되었지만 출항 당시에도 이미 파고가 높아 예인선단의 출항을 연기할 수도 있었다. 항해 도중 풍랑주의보가 발령되었을 때 급히 인천항으로 회항하거나 가까운 항구로 피항하였으면 사고를 예방할 수도 있었겠지만 안전에 대한 과신으로 운항을 계속하는 우를 범하기도 하였다. 해상 크레인이 표류하여 허베이 스피릿호로 접근했을 때도 적극적인 회피를 하는 등 초기 대처를 잘 하였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충돌 직후 기름 유출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긴급 수선을 하거나 기름띠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방어 펜스를 설치하였으면 해양 오염도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사고는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 있지만 사고에 대한 후속 조치의 부족이 사고의 피해를 크게 키운 셈이었다.

정부는 사고 이후 40여개 지역을 대상으로 오염조사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방재작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태안군과 서산시 일대는 재난지역으로 선포되어 피해 보상을 신속하게 하였으며 세제 혜택도 주어졌다. 태안반도로 가는 자원봉사자들에게는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 주기도 하였으며 피해지역 출신 군인에게는 특별 휴가를 주기도 하였다. 이런 정부의 노력과 자원봉사를 통한 국민의 노력은 태안반도의 해양 오염 피해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원본:https://www.h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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