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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으로 읽는 세상만사]
한국재난뉴스 객원 칼럼니스트
전주대학교 교수

우리나라에는 국립 박물관이 꽤 많이 있다. 서울에 소재한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국립경주박물관, 국립부산박물관, 국립대구박물관 등 도시 이름을 딴 국립박물관이 13개나 더 있다. 그 외에도 정부 부처별로 국립해양박물관, 국립지도박물관 등 40여 개의 박물관, 전시관, 과학관 등이 있다.
박물관이 많은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박물관을 국립으로 해야 하는가는 다른 문제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고 지방 분권이 본격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보면 박물관도 지방자치단체에서 설립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관광부 산하의 국립박물관은 대부분 고고ㆍ역사 박물관이다. 외국의 경우 민족박물관이나 자연사박물관이 보편화 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학계에서는 이런 불균형을 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수차례 있었으나 조금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국립박물관을 보면 역사박물관은 국립미국사박물관 하나만 있다. 나머지는 ▲국립아프리카박물관, ▲국립자연사 박물관, ▲국립의료박물관, ▲국립항공우주박물관, ▲스미소니언디자인박물관 등 주제별 박물관이 대부분이다. 영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영국에는 대영박물관(정확하게는 영국박물관, British Museum)이 가장 대표적인 국립박물관이며 나머지는 ▲국립해양박물관, ▲영국국립철도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등 주제별 박물관이다. 프랑스의 경우도 루브르박물관을 비롯해 ▲자연사박물관, ▲기차박물관, ▲로뎅미술관, ▲퐁피두센터 등이 국립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는 국립박물관을 주제별로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으며 국립의 고고역사박물관은 하나만 운영하고 있을 뿐 우리나라처럼 지역마다 국립박물관을 설립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한 경우가 일본이다. 일본은 국립의 고고역사박물관으로 ▲도쿄국립박물관, ▲쿄토국립박물관 ▲나라국립박물관, ▲큐슈국립박물관 4개를 운영하고 있다. 나머지 국립박물관은 ▲국립과학박물관, ▲국립역사민속박물관, ▲국립민족학박물관 등 주제별 박물관이다. 일본에서 쿄토와 나라가 차지하는 역사적ㆍ문화적 위상을 생각하면 쿄토와 나라에 국립박물관을 둔 이유는 충분히 짐작이 된다. 그 외 지방에 있는 국립박물관은 큐슈박물관으로서 이는 한 도시의 이름을 딴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섬을 명칭으로 하고 있다.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 생각해 보면 국립대구박물관이 대구의 문화유산만 전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경북까지 포함한 더 넓은 지역을 전시와 연구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국립전주박물관이 전주의 문화유산만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국립광주박물관이 광주의 문화유산만 다루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국립박물관의 이름으로 도시의 이름을 선택한 것은 단순히 그 박물관의 위치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위치는 장소성을 침해한다. 지방자치단체인 부산시가 박물관을 설립해 부산의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고양하고 싶어도 ‘부산’박물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어렵다. 이미 국립부산박물관이 있기 때문에 부산시립박물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립과 시립이라는 명칭의 위계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제대로 된 박물관을 설립하기 어렵게 한다. 이런 예는 국립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는 전국의 모든 지자체가 경험하는 일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을 국립대한민국박물관으로, 국립경주박물관을 국립신라박물관으로, 국립 공주, 부여, 익산박물관을 통합해 국립백제박물관으로, 국립대구박물관과 부산박물관을 통합해 국립영남박물관으로 하는 것 등이 박물관의 주제와 장소성을 더 구체화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주제별 국립박물관을 설립하는 방안도 더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국립자연사박물관과 국립민족학박물관의 건립은 시급하다. 자연사박물관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의 모든 문화와 문명이 자연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고 발달해 왔음을 보여줌으로써 국민에게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줄 수 있다. 민족학박물관은 지구에 공존하고 있는 다양한 민족들의 삶과 문화를 전시하고 연구함으로써 우리가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구촌의 다른 민족 및 국가와 협력하고 공생해야 함을 교육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국립박물관이 자신에 대한 앎을 지향했다면 이제는 타자에 대한 앎과 공생의 가치를 지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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