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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한국재난뉴스 DB

 

 

최근 남해를 다녀왔다. 대학교 졸업 여행으로 처음 방문했으니 약 5년 만에 방문한 셈이다. 남해는 5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약 2-3년 전 이후 업데이트가 된 적 없는 렌터카 내비게이션으로 필자가 가고자 하는 곳들을 찾는데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가는 길도, 가게 상호도, 지역 명소도 모두 그대로였다.

차를 타고 달려가던 도중 문득 도보가 눈에 들어왔는데, 보도블록 사이로 자란 잡초가 무성했다. 길가에 난 쑥은 사람 무릎 높이만큼 높게 자라 있었고 사실상 잡초를 밟지 않고는 그 길을 걸어가지 못할 정도였다. 나무가 자란 곳 이외에 들풀 관리가 깔끔하게 되어 있는 수도권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남해정도는 아니었지만 부산을 갔을 때만 해도 어느 정도 동일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새삼 수도권의 보행자 도로는 정말 관리가 잘 되어 있다.

필자가 남해에 있던 첫째 날엔 하루 종일 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세차게 내리는 정도는 아니었고, 적당히 우산을 쓰고 걷기 좋을 정도의 빗줄기였다. 차를 타고 계속 가는데, 도로에 물이 고여 있었다. 수도권이었다면 장마 기간에나 볼 법한 현상이었는데 이른 5월, 강수량이 그리 많지도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다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도로 하수구 위에 수북이 쌓인 낙엽이 보인다. 낙엽을 제때 제거하지 않아 물이 빠지지 않았기에 생긴, 다소 귀여운 현상이었다.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비는 이내 그쳤기 때문이다.

남해의 호젓한 풍경을 바라보면 기분이 좋다. 음식도 맛있고 마을 어르신 분들도 친절하시다. 남해에 사는 청년들이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은 놀라울 정도로 브랜딩이 잘 되어 있었고 읍내나 다른 골목에 자리 잡은 카페, 레스토랑도 감각적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서 가능성을 발견하여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는 청년들의 모습들을 보면 막연하게 생각했던 귀농에 대한 생각에 불이 붙곤 한다.

필자에게도 언젠가는 귀농을 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하지만 선뜻 남해에 살겠냐고 물어본다면, 글쎄. 보도블록의 무성한 잡초와 도로에 고인 물이 잔상에 남을 것 같다. 잡초는 베면 그만, 낙엽은 치우면 그만이고 필자가 머무는 순간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마 군에서는 도로 정비보다 더욱 중요한 뭔가가 있었으리라. 하지만 이전에 당연하게 누려오던 것들이 부재했을 때의 공백은 생각보다 크게 느껴진다. 기후가 변화무쌍한 요즘 시기에, 이와 같은 예비가 허술한 모습을 마주했을 때의 필자가 맞닥뜨린 감정은 귀여운 허술함에 그친 정도가 아닌, 일종의 공포였다. 수도권에 있었더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강수량이 이와 같은 대비책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지방이기에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고, 어쩌면 지방이라는 이유로 내가 겪은 문제가 남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지방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관심과 지원조차 받지 못해 그 피해를 온전히 지역민만 감당해야 할 때의 감정은 실로 두려움과 같다.

수도권과 지방의 지역 격차의 요인으로 언급되는 ‘인프라’는 단순히 직업, 문화 시설을 넘어 이처럼 정말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것을 내포한다. 그렇기에 필자는 귀농에 관심이 있다고 말을 하면서도 수도권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아마 필자와 같은 사람이 귀농을 직접 실행에 옮기기까지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우선순위의 가치관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필자가 좋아하는 이 지방도시가 갑작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잘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강인함을 장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원본:https://www.h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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