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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휴, 필자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고 왔다. 대지진으로 서울은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어 모든 것이 무너진 가운데 황궁 아파트 한 동만 그대로 남는다. 삶의 보금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하나 둘 황궁 아파트로 모이기 시작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입주민들은 입구를 봉쇄하여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다. 그렇게 단절을 선언하며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공고히 다져나간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특히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생각을 한 번쯤 해봤으리라.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대지진에 살아남았다고 해도 밖은 너무 추운 겨울이라 동상에 걸려 얼어 죽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으면 어떠한가. 내게 집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선택 받은 것 같은, 특별한 기분에 휩싸인다. 보급품이 어떻게 배분될지 몰라 식량은 언제 동이 날지 모른다. 내 손에 쥔 것을 더욱 놓치기 싫어지고 내 안위가 더욱 우선시된다. 이 상황에서 전혀 모르는 외부인을 내 집으로 들여와 내가 가진 것을 선뜻 나눌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렇게 내 이익을 챙기며 단절을 선언하는 스토리에서 대개 평화란 없다. 갈등이 분명 발생한다. 재난 영화에서만 적용되는 법칙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가 맞닥뜨리는 문제들도 이와 같다.



하와이 마우이 섬에서 산불이 크게 났다. 현지시간 15일 기준, 사망자 수가 106명에 달했는데, 강력한 불길 때문에 대부분의 시신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었다고 한다. 산불이 발생한지 1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진압되지 않고 있고, 사망자 수는 2-3배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한다. 빠른 속도로 퍼지는 불을 피해 도망치던 현지인들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결국 바다로 뛰어들었다. 생사를 넘나들었던 이들이 바다에서 목격한 것은 해수욕과 스노클을 즐기고 있는 관광객들의 모습이었다. 더욱이 부동산 투기꾼들은 현지 주민들에게 집을 팔라며 활개를 친다. 주민들로서는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이웃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이 그저 내게 주어진 휴가를 즐기는 모습은 영화와 무엇이 다른가. 이웃의 고통을 그저 내 삶이 안정될 수 있는 수단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영화보다 더 하다. 우린 이따금씩 모든 삶의 터전이 다 붕괴된 디스토피아적 상황 속에서 인간의 모습이 어떠할지 상상하곤 한다. 오늘 하루 내가 행한 크고 작은 이기적인 행동들이 몇 배는 부풀려져 디스토피아에서 내가 고스란히 먹을 쓴 열매로 다가올 것이다. 도래하지 않을 극단적인 상황을 상상할 것도 없다. 이미 우린 매일 재난 속에서 하루를 살아내고 있지 아니한가.



그럼에도 희망이 있다면, 궁지에 몰린 외부인들을 포용하고자 한 사람들의 움직임 덕분이다. 희망은 언제나 단절이 아닌 연대에서 피어오른다.



원본:https://www.h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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