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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재난뉴스 객원 칼럼니스트
전주대학교 교수

LH건설이 발주한 아파트에서 철근을 제대로 넣지 않고 지하주차장을 시공한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또, 하자 보수를 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를 노출하였다. 이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건축 비리의 단면을 드러낸 것이다.
이번에 적발된 아파트들은 무량판 구조로 설계되었다. 무량판 구조는 1995년 502명의 사망자와 6명의 실종자 그리고 937명의 부상자를 낳고 붕괴된 삼풍백화점의 시공방식이었다. 무량판 구조는 천정에 보를 설치하지 않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천정은 기둥 위에 보를 설치하고 보 위에 콘크리트를 타설하지만 무량판 구조는 보 없이 천정을 만든다. 기둥과 천정이 직접 만나기 때문에 천정의 두께나 강도가 보강되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천정에 많은 철근이 배치되어야 한다. 또한 천정과 기둥이 만나는 지점에 보조 패널이 설치되어 위로부터 오는 하중 때문에 천정이 기둥에 뚫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삼풍백화점은 부실한 보조 패널과 천정 때문에 기둥이 천정을 뚫어버려 5층 건물이 순차적으로 내려앉아 붕괴되었다.
아직까지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의 기억이 생생한데 다시 무량판 구조에서 철근을 부실하게 시공했다는 사실은 충격을 준다. 대형 건축물의 붕괴는 그 자체로도 재난이지만 국가와 사회의 수준이 그 정도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에게 큰 상심과 자괴감을 주기도 한다.
설계된 대로 정확하게 시공하지 않고 임의로 철근을 빼고 시공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우선 시공사의 안전불감증과 경비 절감 욕구 때문이다. 철근을 적게 넣어도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과 조금이라도 더 이윤을 남기려는 욕구가 부실시공의 일차 원인이다. 안전불감증은 이미 많은 재난적 사고를 초래하였다. 전 국민에게 충격을 준 성수대교 붕괴, 서해 훼리호 침몰, 세월호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등은 모두 안전불감증이 원인이었다. 생명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생각으로 안전에 더 유의하여 설계된 대로 시공하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한편 부실시공은 양심 없는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선 설계, 시공, 감리의 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설계과정에서 구조설계가 더 엄격해야 한다. 건축 설계는 건축물의 기능과 아름다움을 지향하지만 구조설계는 그런 구조물이 계획대로 시공될 수 있는가를 공학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건축설계에 비해 구조설계의 역량이 떨어지거나 주도권을 가지지 못한다면 안전 시공은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감리 과정에서도 감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감리는 시공이 끝난 뒤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부실시공이 되었으면 해체 후 재시공을 해야 한다. 그러나 재시공을 해야 할 경우 시공사의 비용 부담이 늘어나고 감리회사가 시공회사에 대해 을의 입장이다 보니 강력하게 재시공을 요구할 수 없다. 결국 부실시공이 되었음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
시공사 입장에서는 적절한 공사비가 확보되지 못하기 때문에 부실시공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최저입찰제와 치열한 수주 경쟁으로 인해 시공회사는 낮은 가격으로 공사를 수주하고 실제 시공은 하청과 재하청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건설 현장이다. 이런 과정으로 실제 시공을 담당하는 업체는 빠듯한 공사비로 시공할 수밖에 없다. 적은 공사비로 시공을 하려고 하면 비숙련 노동자를 활용하거나 부실한 자재를 사용하는 것을 피할 수 없고, 나아가 철근 등 비싼 자재는 양을 줄여서 시공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결국 공사가 마무리 되면 하자보수나 유지보수에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부실시공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시공회사가 적절한 공사비를 확보할 수 있도록 건축 관행이 변해야 한다.
원본:https://www.h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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