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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출근길,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만원 지하철에 서있던 필자였다. 임신을 하여 배가 꽤 부푼 임산부 1명이 지하철에 탑승했다. 임산부석에 앉으려 해당 출입문에 맞춰 탄 것 같아 보였는데, 이미 그곳엔 다른 임산부가 앉아 있었다. 앉을 자리가 없어 1분 정도 서있을 무렵 다른 승객이 자리를 양보해 그 임산부는 무사히 앉을 수 있었다. 불과 1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입장으로서 앉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이와는 비슷할수도, 조금 다른 이슈일지도 모르겠지만 14년 동안 유지되었던 여성우선주차장이 사라졌다고 한다. 2009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주차에 서툰 여성을 배려하고 여성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며 임산부와 어린이를 동반한 여성 운전자를 배려한다는 취지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차에 서툰 여성을 배려한다는 취지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조장하며 여성이 운전에 미숙하다는 편견을 강화한다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여성을 범죄로부터 보호한다는 취지는 오히려 범죄의 표적으로 작용됐고 어린이를 동반한 여성 운전자를 배려한다는 점은 아이를 동반하는 게 여성만이 아니라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임산부를 위한 배려는 필요하지만 이 점이 굳이 여성 전체에게 확대되어야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이어졌다.



여성우선주차장이 타 주차장 대비 넓게 구획된 것은 마치 배가 부른 임산부가 편하게 승하차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 다른 구역이 아닌, CCTV나 출입문과 가까운 곳에 그려진 이유는 여성을 노린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게 함이었다. 여성우선주차장이 가족배려주차장으로 대체되며 이용 대상은 임산부, 노인, 영유아 동반자로 바뀌었다. 임산부는 새롭게 바뀐 가족배려주차장에서 배려 받을 수 있지만 주차장 범죄에 노출된 여성을 위한 제도는 대안 없이 사라졌다. ‘여성 우선’의 의미가 ‘여성 전용’이라는 의미로 굳혀지며 배려보다는 차별이라는 의미가 더 강해져 결국 반발심을 야기했다.



주차장을 비롯하여 운동 시설, 찜질방, 휴게실에서 각종 ‘여성 전용’ 시설들이 증가하는 현상을 보곤 한다. 외려 묻고 싶다. 여성을 분리하는 공간을 만든다고 해서 이 사회 속 여성의 안전이 보장되는가. 함께 어우러졌을 때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적 환경에서 그저 분리만 하면 여성은 저절로 안전해지는가. 여성이 안전해지는 길은 단절에서 올 수 있는 것인가.



다시, 지하철 임산부석을 생각해보자. 제도적으로 마련된 임산부석이 다 차버린 순간, 다시 말해 제도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 그 이상의 순간이 왔을 때 서있는 임산부를 자리에 앉힌 것은 한 사람의 배려 덕분이었다. 여성 뿐만 아니라 보호 받아야 하는 대상들을 위한 제도가 마련되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제도를 따르는 것 이상의 자발적 실천과 배려이다. 그리고 정말 실천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구축해야 할 근본적인 안전이다.



원본:https://www.h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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