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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선자가 청와대에서 나와 용산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고 한 결정이 국민적 논란으로 비화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는 청와대를 나와 광화문 시대를 열겠고 공언하였지만 몇 가지 이유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자신들이 지키지 못한 약속을 윤석열 당선자가 실행에 옮기려는 상황에서 현 여권은 반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통령이 집무를 청와대에서 할 것인가 청와대를 나와서 할 것인가의 문제는 이전 비용, 국가 안보, 경호 등의 관점에서 조망될 수도 있지만 더 본질적인 관점이 있다. 그것은 대통령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대통령은 국민을 통치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국민을 위한 봉사자인가? 즉, 대통령은 왕과 같은 존재인가 아니면 공무원인가의 문제이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은 공간이 행동과 생각을 규정한다고 주장하였다. 홀의 견해에 따르면 대통령이 어느 공간에서 업무를 보는가는 그의 존재 양상을 규정하는 것이 된다.



잘 알다시피 청와대는 조선시대 궁궐인 경복궁의 후원에 자리하고 있다. 경복궁은 왕의 집무 및 생활공간으로서 일반인의 그것과는 엄격히 구분되는 공간이었다. 왕은 신민과 다른 존재라는 인식은 궁궐이라는 공간을 통해 재생산되었다. 경복궁의 상징성은 조선의 멸망 이후에도 유지되었다. 일본은 조선을 침탈한 뒤 경복궁 앞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짓고, 경복궁의 후원에 총독 관저를 지었다. 이는 궁궐을 훼손함으로써 조선을 폄하한 것이면서 동시에 총독이 왕과 같은 지위를 지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 총독 관저가 청와대의 시작이다. 총독부와 총독 관저는 조선시대 왕과 왕궁의 이미지를 계승하며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청와대는 해방 이후 미군정시대에는 미군정장관의 거처로 이용되었으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는 경무대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었다. 청와대라는 공간은 조선시대 이후 국민을 지배하는 통치자의 공간으로 기능하였던 셈이다.



청와대에 거주하는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이미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궁궐의 뒤 제일 높은 곳에서 국민들의 생활공간뿐 아니라 궁궐까지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는 청와대는 지배와 통치의 공간이다. 직선제에 의해 국민이 선출하며 임기제에 바탕을 둔 대통령은 제도적 민주주의가 실현된 모습이지만 청와대에 거주하는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제왕과 다를 바 없이 인식된다. 권위적 대통령, 불통의 대통령,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의 이미지는 청와대를 사용하면서 형성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선출직 공무원이며 임기 동안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리라는 인식은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오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대통령의 집무 공간은 궁궐과 결별하고 국민과 더 가까워야 한다. 그 핵심은 광장이다. 광장은 권력자의 공간이 아니라 시민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광장은 시민이 자유롭게 접근하고 놀고 쉬며 자기 목소리를 내는 곳이다. 대통령 집무실이 시민의 공간인 광장을 마주하고 있을 때 대통령과 국민은 더 가까워질 수 있으며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화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대통령이 청와대를 벗어나 새로운 집무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의 천도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이래 지배자의 공간이었던 청와대를 벗어나는 것은 대통령이 지배자 또는 통치자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봉사자임을 인정하는 것이며 진정한 민주주의 대통령 시대를 여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도 국민의 동의 없이 일을 추진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다. 권위주의 대통령 시대를 넘어 민주주의 대통령 시대를 여는 일에 집무실 이전의 당위성과 이전의 절차와 비용 그리고 위험 요소를 국민들에게 설명하여 동의를 구하는 절차도 그래서 불가결하게 중요하다.



원본:https://www.h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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