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전주대학교 교수ㆍ인류학
원산지 표시제도의 함정
삭품의 안전성 위주의 제도 재정립 필요해

1991년 우리나라에서 원산지 표시제도를 실시한 이래 모든 음식점에는 식재료의 원산지를 표시해 두고 있다. 원산지 표시제도는 국제적 분업이 활발해지면서 식재료의 생산지와 가공물의 생산지가 일치하지 않게 되어 도입한 제도이다. 즉, 원산지 표시제도는 두 가지 효과를 갖는다. 하나는 원산지를 통해 식재료의 품질을 소비자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에 따라 식재료와 음식의 가격이 적절한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호주산 쇠고기를 사용한 음식은 한우를 사용한 것보다 품질이 떨어질 것이며 따라서 가격도 국산 쇠고기를 사용했을 때보다 저렴해야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원산지 표시제도는 편견에 의존해 있고 편견을 조장한다. 사실 원산지 표시제도는 국산이 외국산보다 우수하다는 전제를 바탕에 두고 있다. 한 국가에서 생산된 식재료의 품질은 다양하지만 모든 외국산 식재료는 국산 식재료보다 품질이 낮다고 인식한다. 이 인식 때문에 식재료 수입을 하는 사람들은 품질이 낮은 식재료만 수입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품질의 식재료라도 원산지가 호주, 중국, 러시아 등으로 표시되는 순간 국산 재료보다 품질이 낮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외국농축산물 수입이 허용된 이후 국내 농축산물 생산 기반이 위축되면서 우리 몸에는 우리 땅에서 생산된 식재료가 더 좋다는 ‘신토불이’ 개념이 확산되었다. 원산지표시제도는 신토불이 개념에 근거해 국내산 농축산물의 가격이 수입산보다 더 비싸게 형성되는 촉진제가 되었다. 원산지 표시제도는 국내 농축산물 생산 기반을 지켜준 반면 수입 식품이나 식재료의 품질은 지속적으로 낮은 상태를 유지하게 한 셈이다.

 

그러나 소비자가 식재료에 관해 알고 싶어하는 정보 중 원산지가 가장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수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은 잔류 방사능의 양이지만 이에 대한 정보는 없이 그 수산물이 일본산인지 러시아산인지만 표시되어 있다. 쇠고기의 경우도 지방의 함량 등과 같이 건강에 더 중요한 정보는 생략되고 그 생산지만 표시되어 있다. 결국 원산지 표시제는 식재료의 원산지만 알려주고 그 나머지 것, 즉 먹어도 되는 것인지 먹으면 위험한 것인지, 건강에 어느 정도 유해한 것인지에 대한 정보는 전부 생략되어 있다. 이런 판단은 결국 소비자의 몫으로 남겨 놓은 셈이다.

 

정부는 국민이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수산물의 경우 방사능 잔류량을 기준으로 적합한 식품인지 적합하지 않은 식품인지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농산물의 경우 농약 잔류량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내가 선택한 식재료가 국산인지, 중국산인지 아니면 미국산인지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식재료가 내 건강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유해한지를 아는 것이다. 원산지 표시제도를 넘어서서 식재료에 관한 정보를 식품의 안전성 위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원본: www.h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411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