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

[칼럼] 공약(公約)과 공약(空約)

한국재난뉴스 2025. 5. 22.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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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으로 읽는 세상만사
한국재난뉴스 객원 칼럼니스트
전주대학교 교수
▲사진_선거벽보 / 한국재난뉴스 DB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유권자들의 관심은 지지율 변화와 TV토론에 집중되고 있다. 지지율은 대통령 당선자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TV토론은 출마자들 간의 논리 싸움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러나 후보자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나라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 그리고 어떤 정책으로 국정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지를 알 수 있는 공약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언론도 지지율과 TV토론은 집중 보도하지만 공약에 대한 분석 보도는 많지 않다. 결국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자가 당선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만 관심이 있고 정작 그 후보자가 어떤 방향과 방법으로 국가를 경영할 것인가에는 관심이 크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 국민은 정치인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 듯하다. 정치인이 거짓말을 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대해서도 이상하리만큼 관대하다. 심지어 자신의 과거 행위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선거법 위반으로 보지 말자고 주장하기도 하고 음주운전 등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전과가 있어도 정치인이니까 그냥 넘어가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선거 때 공약으로 내세운 것을 당선 이후 실행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유권자를 향한 공적 약속인 공약(公約)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공약(空約)과 같은 개념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그러니 후보자는 공약을 심도 있게 연구하거나 검토하지 않고 유권자도 공약(公約)은 어차피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것은 심각한 정치 불신의 씨앗이 된다.

공약은 유권자에 대한 약속이자 유권자에게 제시하는 비전(Vision)이다. 내가 당선되면 이런 나라를 만들겠다고 유권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공약(公約)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지켜야 하며 불가피하게 지키지 못할 경우에는 유권자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정치인이 공약(公約)만 제대로 지켜도 정치 불신이 해소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정치인은 그런 의지가 부족해 보인다.

정치인이 공약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면 유권자들이라도 공약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후보자가 내세우는 공약(公約)이 내가 희망하는 국가의 모습을 지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공약은 실현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는지를 검토하고 후보자에 대한 지지를 결정해야 한다. 유권자가 공약(公約)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후보자도 공약(公約)을 등한시하게 된다. 결국 정치 불신만 깊어지고 더 엉터리없는 정치인들이 활개를 치게 된다.

이번 대선 후보자들의 공약도 대부분 만족스럽지 못하다. 겉만 번지르르한 미사여구만 나열하고 있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은 없는 공약이 대부분이다. 공약을 보면 국가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생겨야 하지만 그런 기대도 생기지 않는다. 경제 강국, 문화 강국을 만들고 청년이 크는 나라, 기회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그 실행방안은 추상적이다. 그러니 이 후보자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어떤 나라가 될 것인지에 대한 기대도 모호해진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추상적인 공약도 선거가 끝나면 후보자와 유권자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점이다. 약속을 한 사람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는 것이 본능이다. 그러나 약속을 받은 사람은 약속을 기억하고 추궁해야 한다. 정치인이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들어버리려고 해도 유권자는 공약(公約)을 지키도록 요구해야 하며 지키지 않을 때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정치인이 유권자를 두려워하는 핵심 요인이다. 투표하는 날까지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자의 지지율 변화와 TV토론을 통한 논리 싸움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공약(公約)도 진지하게 검토해 봐야 한다. 어느 후보자가 내가 원하는 나라를 만들어줄 수 있을지가 지지의 근거가 돼야 한다.

원본:https://www.h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