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재난

[한국재난뉴스_칼럼] 자연과 문명

한국재난뉴스 2025. 3. 27. 15:04
728x90
문화인류학으로 읽는 세상만사
한국재난뉴스 객원 칼럼니스트
전주대학교 교수
 

봄 건조기가 되면서 전국에 산불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산불은 피해의 범위가 넓고 바람을 타고 이웃 지역으로 쉽게 전이되기 때문에 큰 피해를 준다. 종종 산불은 민가를 덮치기도 하고 귀중한 문화재를 소실시키기도 한다. 산불에 대한 경각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다. 더구나 사람의 사소한 부주의와 실수로 산불이 야기되는 경우가 많아 봄철에는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더 크게 가져야 한다.

산불은 인간이 개입돼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자연현상이기도 하다. 봄철 자연발화도 드물지 않으며 바람을 타고 산불이 확산되는 과정은 인간의 개입이 없어도 일어난다.

자연의 가치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자연에 인간의 힘이 개입하는 것을 거부한다. 강에 댐을 막거나 준설하는 것도 자연 훼손이라고 생각한다. 갯벌을 막아 간척지를 만드는 것도 인간이 자연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거부한다. 산에 터널을 뚫어 길을 내는 것이나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도 모두 거부한다. 이들은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오키나와의 류큐대학에는 자연림이 있다. 이 자연림에는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다. 태풍에 의해 나무가 부러지거나 홍수로 사태가 나도 그냥 그대로 둔다. 그 안에는 어떤 식물이나 동물이 서식하든 그대로 둔다. 자연림이기 때문에 자연이 스스로의 힘으로 회복되고 천이되기를 기다릴 뿐이다.

반면 문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들은 자연을 변형시켜 인간에게 이롭게 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숲도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개발해 인간에게 이로운 수목을 심고, 조경의 과정을 거쳐 인간이 즐기기 좋은 곳으로 변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사막에도 나무를 심어 사막을 줄이고자 하며 산사태나 홍수가 날 지역은 미리 대비해 자연재해가 줄어들게 한다. 이런 과정은 곧 문명이라고 여기며 적극적인 인간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지속적으로 문명화의 길을 걸어왔다. 그 과정에서 자연을 개발하고 이용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문명화의 길은 필연적으로 자연을 훼손하게 됐고 오히려 인간에게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 그 결과 문명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나게 됐다.

뉴기니의 쳄바가 마링 부족은 이런 면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챔바가 마링 부족은 농사를 하며 돼지를 기른다. 이들에게 돼지는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돼지는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고 인식되지만 돼지가 너무 많아지면 농경지도 더 넓어져야 하고 인간의 노동도 더 과중해진다. 이런 부담이 커지면 이들은 카이코(Kaiko)라는 의례를 행해 돼지를 집단적으로 도살하고 축제를 연다. 그리고 때로는 원시전쟁을 해 인간의 수도 줄인다. 자연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결국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에 적절한 선에서 욕구를 자제, 자연이 회복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 인간의 문명은 자연과 조화를 이룰 때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챔바가 마링 부족은 알고 있는 듯 하다.

자연은 아름다우며 그대로 두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때로는 그대로 둔 자연이 자연을 더 크게 훼손하기도 한다. 사막화, 산불, 하천의 범람, 산사태 등은 그런 예에 해당한다. 자연을 그대로 두는 것이 더 크게 자연을 훼손할 때에는 인간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아무리 산불이 수목의 자연적인 천이를 가능하게 하고 토양을 더 기름지게 한다고 하더라도 산불은 막을 수 있으면 막아야 한다. 산불 예방과 산불 진화를 위한 인간의 적극적인 개입이 요구된다.

원본: https://www.h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8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