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

[칼럼] 정치화된 헌법재판관 임명과 새로운 정체체제의 모색

한국재난뉴스 2024. 12. 2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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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으로 읽는 세상만사
한국재난뉴스 객원 칼럼니스트
전주대학교 교수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 소추되면서 그 심리와 판결을 맡은 헌법재판소가 초미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현재 헌법재판관이 6명밖에 되지 않아 나머지 후보자 3명 인사 절차를 두고 여야가 대립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한덕수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민주당은 조속한 임명을 요구하고 있다. 탄핵 심판은 재판관 9인 중 6인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6인이 심리하는 현 상황에서는 재판관 중 한 명이라도 반대할 경우 탄핵은 기각된다.

주지하다시피 헌법재판관은 9명으로 구성되며 대통령과 대법원장 그리고 국회가 각각 3인을 추천해 구성한다. 이 가운데 국회가 추천한 재판관 3인이 지난 2024년 9월을 끝으로 임기가 만료됐다. 통상 국회는 여당이 한 명, 야당이 한 명 그리고 여야 합의로 한 명을 추천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여당인 국민의힘이 한 명, 그리고 야당인 민주당이 두 명을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해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6인 체제가 유지되는 와중에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 소추가 이뤄졌다. 헌법재판소법은 7인 이상의 재판관이 심리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6인 체제로는 이진숙 위원장에 대한 탄핵 심리가 이뤄질 수 없었다. 민주당은 이진숙 위원장에 대한 탄핵 심리가 이뤄지면 기각될 것을 우려해 국회 추천 재판관 추천을 계속 미뤘다. 이에 이진숙 위원장은 헌재소송을 통해 6인의 재판관만으로도 심리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한밤중에 뜬금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이것이 계기가 돼 탄핵 소추가 이뤄졌다. 정치 논리로 6인 재판관 체제를 유지하던 민주당은 자신들이 조성해 온 6인 체제로 역풍을 맞이하게 됐다. 6인 체제로 심리가 이뤄질 수는 있지만 6인의 재판관 중 한 명만 반대해도 탄핵은 기각되는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민주당은 부랴부랴 헌재 재판관 추천을 서둘렀지만 이번에는 국민의힘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재판관 임명에 비협조하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은 국회 추천 재판관은 말 그대로 국회가 추천하는 것이므로 여당과 야당의 합의가 있어야만 추천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국회 추천 재판관을 정당이 나눠 추천할 수 없다면서 여야 합의가 되지 않은 재판관 추천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역시 헌재 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권한대행이 재판관을 임명할 수는 없다고 버티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탄핵을 소추한 국회가 심리와 판결을 맡은 재판관까지 추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번 탄핵 소추는 1987년 헌법의 맹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 소추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국무총리까지 탄핵되었을 때 국민의 직접 선출과 국회 동의를 거치지 않은 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 헌법재판관 임명이 되지 않을 때 헌재의 기능 정상화 방안 등 곳곳에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더구나 내년 4월이면 대통령이 추천한 헌재 재판관 두 명의 임기가 종료된다. 대통령 추천 몫을 권한대행이 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남는다. 이는 1987년에는 우리 정치 상황이 이렇게 복잡해질 것을 미처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탄핵에 이어 권한대행 탄핵까지 하게 될 것이나, 거대 야당이 정략적으로 헌재 재판관 추천을 방치하게 될 것이나, 대통령이 탄핵 소추를 당한 상황에서 헌재 재판관을 임명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을 예측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헌재 재판관 임명이 당리당략으로 흐른 결과 결국 이런 사태가 만들어진 것이다.

1987년 체제는 이제 그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고 본다. 복잡해진 정치 상황을 담을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체제가 필요하며 이는 개헌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탄핵의 인용과 기각을 두고 정쟁만 일삼을 것이 아니라 정치권은 새로운 체제를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둘로 갈라진 정치권, 나아가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원본:https://www.h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