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가 떠들썩하다. 지난 토요일 광화문, 국회의사당 등 주요 시위 스팟과는 다소 거리가 먼 수서역 한자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도 대통령 탄핵을 지지하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귀에 익은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이내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진다. 귀에 익숙한 케이팝 멜로디가 들려 호기심에 창문을 열어보니 탄핵을 절묘하게 섞은 가사가 들렸고 이에 주변 사람들이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사안은 심각하기 그지없지만 오늘날의 시위는 모두가 즐기는 문화이자 축제로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주말에는 각종 SNS를 통해 시위 인증샷이 올라오고 평일이면 프로필에 촛불 아이콘이 올라온다. 필자의 지인은 집에 촛불이 없어 아쉬운 대로 향초를 들고 시위에 임했다고 한다. 때 아닌 향긋한 시위 인증샷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시위에 임하게 된다. 평일에도 계속되는 시위에는 다들 일 때문에 참여할 상황이 여의치 않아진다. 그러면 모두들 SNS 프로필 창에 촛불 아이콘을 띄워 분위기를 이어간다. 시위에 참여하는 방법도 점차 다양해진다. 추운 날씨, 바깥에서 몇 시간 동안 고생하는 이들을 위해 시위 장소와 인접한 카페에 음료 100잔을 선결제로 결제해놓은 뒤 받아가라는 미담이 이어진다. 이러한 선한 영향력은 빠르게 확산돼 시위 장소 근처 해당 소식을 알려주는 매장 지도도 앱으로 출시됐다.
한국의 촛불 시위 형태는 2014년 이후 2024년, 더욱 진화하고 있다. 2014년에는 조용하지만 강인한 촛불로 평화적인 시위의 형태에 불을 지폈다면, 2024년 다시 시작된 촛불 시위는 한층 더 활기를 띠고 있다. 가수 응원봉이 등장해 촛불보다 더 밝은 빛을 내는가 하면 케이팝을 개사한 탄핵 구호는 귓가에 계속 맴돌곤 한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던 MZ세대들의 참여가 그 어느 때보다 두드러지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외신들 역시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계엄 선포 사태에 주목하고 있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 문화 강국으로서 자리매김하던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중단하기 위한 계엄령이 선포되다니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는 반응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이 일궈낸 경제, 문화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권위주의적 문화의 잔재가 초래한 결과라는 분석이 잇따른다. 이에 더해 이번 계엄 사태가 불러일으킬 경제적 손실은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와는 별개로 한국의 민주주의와 정치 시위의 트렌드는 갈수록 세련돼지고 있다.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집회에 나선 젊은 세대와 크리스마스 조명을 몸에 휘감고 민주주의에 대한 참여를 하는 모습은 외신의 주목을 받아 마땅했다.
돌이켜보면 한국이 군사 독재에서 벗어난 시기는 불과 30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로 밝혀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상이 없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더욱 밝게 타오르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