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재난

[문화인류학으로 읽는 세상만사] 내비게이션의 반란

한국재난뉴스 2024. 9. 1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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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재난뉴스 객원 칼럼니스트
전주대학교 교수
 

금년 추석 귀경길에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갔다가 농로에서 수 시간 동안 갇혀 있었다는 사연이 언론에 보도됐다. 단순히 길 안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 교통정보를 반영한 내비게이션이 개발되고 조금이라도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고자 하는 운전자는 내비게이션 의존도가 더 심해진다. 고속도로와 같은 간선도로가 정체되면 내비게이션은 국도나 지방도 등 대체도로를 안내하고 그 안내를 받은 운전자들이 대거 대체도로로 몰리면서 대체도로가 극심한 정체를 빚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실시간 교통정보로 목적지 도착 예정시간을 미리 알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원하는 운전자는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맹목적으로 순응한다. 내비게이션은 정보를 제공하는 도구이며 그 정보를 종합해 판단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단순한 원리를 잊어버리고 내비게이션에게 판단을 맡겨버린 결과다. 이런 현상은 AI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더 심각해질 것이다.

지난 2016년, AI 바둑기사인 알파고와 이세돌이 기념비적인 대국을 할 때 한 해설자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 해설자는 바둑 초반 알파고가 둔 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 십 수가 지난 뒤 그 수는 바둑의 승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착점이 됐다. 미리 수 십 수 앞을 내다보면서 그 곳에 착점했는지, 아니면 그 착점을 고려해 바둑을 풀어간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당시 인간은 AI의 판단력을 따라 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이후 내로라하는 프로기사들도 바둑을 두면서 AI기사에게 최선의 수를 물어보고 AI기사의 착점을 정답으로 인정하는 경향을 보이게 됐다. 인간이 최종 판단을 AI에게 넘기는 일이 당연시 되고 있는 셈이다.

종종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운전을 하다 보면 내비게이션이 유료도로를 고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속도로 우선으로 설정하지 않았고, 고속도로 못지않은 국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속도로만 고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내비게이션 회사와 도로공사가 모종의 밀약(?)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대로 갈 것이지, 내 소신대로 갈 것인지를 두고 갈등하게 된다.

내비게이션이나 AI가 자유의지를 가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운전자를 골탕 먹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잘못된 길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인류의 종말을 앞당기도록 거짓 정보를 제공하는 AI에 대한 우려는 단순한 기우일까? 아니면 실재하는 위험일까?

AI 기술을 이용한 완전한 자율주행 자동차의 개발도 이런 지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자율주행 기술이 프로그램된 대로 작동한다고 해도 윤리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예를 들어 주행 중 차도로 뛰어드는 사람이 있을 경우 그 사람과 충돌해 운전자의 안전을 지키도록 프로그래밍을 할 것인지 아니면 차량의 방향을 급격하게 전환해 운전자를 다치게 하더라도 보행자를 보호하도록 할 것인지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진 AI에게 운전을 완전히 맡기는 모험을 쉽게 할 수 있을까?

결국 이런 정보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중요해 지는 것은 사람이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내비게이션이 주는 정보를 참고하여 최종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운전자가 돼야 한다. AI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AI가 답을 하도록 훌륭하고 적절한 질문을 하는 것은 인간이어야 한다. 정보기술이 발달할수록 세계관, 가치관 등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적 소양이 더 중요해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원본:https://www.h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5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