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

[칼럼] 일제 강점기 시대의 국적 논란

한국재난뉴스 2024. 9. 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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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으로 읽는 세상만사
한국재난뉴스 객원 칼럼니스트
전주대학교 교수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서 뜬금없이 일제 강점기 시대의 국적 문제가 논란이 됐다. 이것은 국무위원의 역사 인식을 검증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고용노동부 장관의 업무 역량을 검증한다는 청문회의 본질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논쟁이었다. 결국 청문회는 역사논쟁이었다는 인상만 주고 끝나고 말았다.

▲사진_김문수 장관, 제10대 고용노동부장관 취임식 / 출처_고용노동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 민족의 국적이 어디였느냐’는 사실의 관점에서 보느냐 인식의 차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회담에서 1910년의 한일합방 조약이 무효라고 합의한 점과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됐으니 우리 민족은 일제 강점기에도 일본 국민이 아니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식의 문제다. 마치 XY염색체를 가진 사람도 자기를 여자라고 인식하면 여자라고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비슷하다.

이렇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은 1945년 우리 민족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고 1948년에 주권 국가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권을 회복했기 때문에 이전의 조약은 무효였다고 선언할 수 있고 식민시대에도 임시정부를 세워 나라를 가졌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도 주관적 인식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보면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인식하든 그것은 그 국가 또는 국민의 자유다. 조선시대의 사대주의를 생존의 전략이라고 인식할 수도 있고 약소국의 수모라고 인식할 수도 있다.

반면 사실의 관점에서 보면 일제 강점기의 우리 민족은 일본 국적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김문수 장관의 주장처럼 우리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손기정 선수도 올림픽에 출전할 때 일장기를 달고 있었고, 김구 선생은 중국 국적을, 홍범도 장군은 소련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이승만 대통령은 무국적자로 살았다. 나라가 있었고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을 가질 수 있었다면 이럴 필요가 없었던 일이다. 대한제국은 1910년에 국권을 상실하고 일본에 병탄됐기 때문에 대한제국 신민은 모두 일본 국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국제적으로도 이 시기의 우리 민족은 일본 국민으로 간주됐다.

이런 점에서 티베트는 좋은 준거가 된다. 티베트 땅에는 일찍부터 여러 나라가 있었으나 통일국가를 이룬 것은 송첸캄포에 의해 7세기에 세워진 토번이라는 국가다. 토번은 한 때 국력이 강해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도 하고 몽골제국시대에도 국권을 상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1951년 중국공산당에 의해 티베트는 멸망했고 달라이라마는 인도로 피난해 망명정부를 세워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티베트에 자치구를 설치, 어느 정도 자치를 인정하는 모양을 취하고 있지만 하나의 중국이라는 목표 아래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티베트에 살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현재 국적은 말할 것도 없이 중국이다.

향후 티베트가 중국으로부터 해방돼 국권을 회복하게 돼도 중국 지배기의 티베트 민족의 국적이 중국이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기간 동안 티베트 민족이 외국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중국 여권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중국 정부의 실질적 통치권 아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인도에 망명했을 뿐 나라를 잃은 적이 없다고 하는 주장은 주관적인 주장일 뿐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사실과 인식은 늘 다르다. 사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식은 사실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인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인식에 의해 구성된다고 생각한다. 사실과 인식이 대립하게 되면 그래서 타협점을 찾기 어렵다. 유일한 해결책은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사실을 주장하는 사람과 인식을 주장하는 사람 모두 잘못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사실에 기반해서 인식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인식에 기반해서 사실을 구성할 수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을 틀렸다고 하지 않는 것이 상대방을 인정하는 출발점이다. 이런 문제로 국회에서 소모적 논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원본:https://www.h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