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
[문화인류학으로 읽는 세상만사] 문화재는 국가유산인가
한국재난뉴스
2024. 3. 1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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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재난뉴스 객원 칼럼니스트
전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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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문화재청
2024년 5월 17일이 되면 문화재 관련 법률이 국가유산기본법을 필두로 문화유산법, 자연유산법, 무형유산법으로 변경된다. 이에 따라 기존에 사용하던 문화재라는 명칭은 국가유산으로 변경된다. ‘문화재’라는 명칭은 재화의 성격이 강하며 또 일제 강점기의 잔재이기 때문에 국제 기준에 부합하도록 ‘국가유산’으로 변경한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국가유산을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의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
국가유산이란 개념은 유네스코가 지정하고 있는 ‘세계유산(World Heritage)’에서 차용한 개념이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을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그리고 복합유산으로 분류하고 있고 이와는 별도로 세계기록유산과 인류무형문화유산도 지정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분류 기준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이란 개념은 이집트의 아스완댐 건설로 누비아 유적이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유네스코가 각 국가에 지원을 요청하여 누비아 유적을 발굴ㆍ조사하고 그 일부인 아부심벨 신전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한 국가의 문화유산도 보존과 향유에는 인류가 함께해야 한다는 인식이 세계문화유산 제도의 출발점이었다. 이 개념으로 각 국가는 자신의 문화유산이 가진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문화재라는 명칭을 국가유산으로 변경하는 것은 이와는 다른 효과를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국가유산 개념은 문화의 범위를 국가로 한정하는 효과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국가 개념은 늘 민족 개념과 대비되어 사용된다. 즉, 해외에 있는 우리 민족이 남긴 유산은 국가유산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생겨난다. 문화유산은 역사의 산물이며 역사적으로 국가는 늘 변해왔고 또 국가의 영토도 변해왔다. 고조선과 고구려 그리고 발해가 남긴 문화유산은 현재 대한민국 영토를 벗어나 더 넓은 지역에 분포해 있다. 즉, 광개토왕비는 우리 민족이 남긴 유산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가유산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자칫 국가유산 개념은 중국의 동북공정에도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만주 지방에서 한민족이 남긴 문화유산을 중국 문화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국가유산 개념은 자칫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있다.
또한 국가유산이라는 개념이 사용되면 한국 내의 모든 문화재는 국가 소유라는 인식이 만들어질 수 있다. 즉, 지방에 소재하고 있는 문화유산을 국가유산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한가의 문제이다. 국가유산이라고 하면 부여의 부소산성은 부여에 있지만 국가유산이 되며, 이것을 관리하는 부여군 문화재과는 부여군 국가유산과가 되어야 한다. 지역에 있는 문화재는 그 지역 사람의 사랑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화재가 국가유산이 되면 지역 사람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가유산을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분류한 것도 문제가 있다. 유산은 인간의 개입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으로 나눌 수 있고 문화유산은 유형문화유산과 무형문화유산으로 나누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유산을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그리고 무형유산으로 분류한 것은 상대적으로 무형문화유산의 가치를 높게 인식한 결과로 보인다. 이렇게 함으로써 문화유산은 무형을 제외한 유형문화유산만 지칭하게 된 것이라는 해석이 필요하게 되었다.
유네스코가 가진 복합유산의 개념이 빠진 것도 유감스럽다. 사실 자연유산은 문화유산과 분리되기 어렵다. 거창의 수승대는 훌륭한 명승이지만 그것이 명승인 이유는 자연경관의 우수함과 함께 그 우수한 자연을 즐긴 사람들의 흔적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수승대에 새겨진 무수한 각자가 그것을 웅변한다. 우리나라의 빼어난 자연경관에는 예외 없이 정자, 사찰 등 인간이 남긴 유산이 있고 전설과 설화가 있다. 이런 사실을 인식한 유네스코는 복합유산이라는 개념으로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결합을 다루고 있지만 국가유산에서는 이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세계유산을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그리고 복합유산으로 분류하고 이와는 별도로 기록유산과 무형문화유산을 지정한 유네스코의 분류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원본:https://www.h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