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재난
[문화인류학으로 읽는 세상만사] 늪에 빠진 의대 증원 정책
한국재난뉴스
2024. 3. 8. 10:55
윤석열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정책이 점차 미궁에 빠져들고 있다. 이미 레지던트의 90%에 해당하는 전공의 8,983명이 병원을 이탈하면서 의료공백이 장기화 되고 있고 정부는 이들에게 의사면허 정지라는 처벌 카드를 꺼내고 있다. 제자들인 전공의가 불이익을 받게 될 위기에 처하자 의과대학 교수들도 병원 진료를 중단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환자들이 받을 피해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는 각 의과대학별로 증원신청을 받았고, 의과대학 교수들의 의견과는 다르게 학교 당국이 당초 정부 계획인 2,000명을 넘어서는 3,401명을 증원 신청하였다. 정부는 이렇게 증원 수요가 많다면서 의대 정원 증가가 바른 방향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의과대학 교수들의 생각은 이와 상반되게 나타나고 있다. 정원증원에 반대하여 삭발을 하는 교수들이 나오고 있고 교수직 사표까지 불사하는 교수들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자칫 의료 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는 상황인 셈이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평가한 병원평가에서 우리나라 병원 17곳이 월드베스트 병원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그 중 16곳이 수도권이며 지방 소재 병원은 1곳에 불과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는 우리나라의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의료 격차를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의료 격차가 실제 어느 정도인지는 평가하기 어렵지만 일반 국민들은 그 격차가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부산에서 피습당한 유력 정치인이 부산대병원에 권역별 외상센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헬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옮긴 사건은 지방 의료에 대한 불신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지역 병원은 인구 감소와 환자의 수도권 쏠림으로 인해 만성 적자에 시달리며 이는 양질의 의료인 확보와 의료장비 구비에 한계로 작용해 의료 환경은 더 열악해지게 된다. 지방 의대를 졸업한 전공의들이 수련은 수도권 병원에서 받으려는 욕구도 강해 우수한 의료인력의 수도권 유출도 심하다. 이런 환경을 그대로 두고 단지 의대 정원만 늘인다고 지역의 의료 환경이 개선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의료체계에서 모순의 극치는 전국민의료보험제도로 의료보험은 국가가 장악하고 있지만 병원은 민간병원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95%가 민간병원으로 OECD 어느 국가보다 민간 의료시설 의존도가 높다. 즉, 공공의료시설은 5%에 불과하다. 농어촌, 지방, 군대 등을 비롯한 의료 사각지대에는 공공병원이 역할을 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병원은 수익에 신경을 써야 하는 민간병원이다. 지방의 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공공병원의 설립과 운영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물론 공공병원이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비용의 불합리성이나 관료제의 폐해에 빠질 수도 있지만 이는 관리기관의 감독과 적절한 인사 조치로 해소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은 많은 갈등과 논란을 낳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어떠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철시켜야겠다는 추진력보다 의료체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성찰하여 하나씩 개선해 나가는 인내심과 소통능력이 더 필요해 보인다. 의료체계의 붕괴 피해는 결국 환자와 국민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