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필자는 가족들과 홍콩 여행을 다녀왔다. 화려한 야경, 높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도시 풍경, 근사한 음식, 쇼핑까지. 오랜만에 다녀온 여행이라 그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처럼 알찼다. 첫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라오스 배낭 여행을 보름 동안, 그것도 스마트폰 없이 다녀온 이후,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로망을 품어봤을 태국 한달살이도 다녀오는 등 필자는 긴 여름, 겨울 방학을 활용하여 해외로 곧잘 나가곤 했다. 학생 때는 금요일 공강을 꼭 성사시켜 주말을 낀 국내 여행도 참 많이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활개를 치며 이곳저곳 다녔는데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여행을 갈 기회가 줄어들었다. 이젠 십시일반으로 연차를 모으고 명절 연휴가 껴야 해외여행을 겨우 다녀올법하다.
주위에서는 여행 횟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쉽지 않냐고 물어본다. 전혀 아쉽지 않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행은 단순한 ‘여행’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듯하다. 여행을 자주 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막연히 떠올려보자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진취적 성향을 지녔을 것 같다.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덜하며 적응력도 뛰어날 것이다. 성격은 밝고 대화하기를 좋아하며 대인관계도 원만할 것 같다. 필자의 생각일 뿐, 개개인별로 떠올리는 면모는 다 다를 테지만 대체적으로 호감형 사람일 것은 확실하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점은 더 나아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도 꽤 유리한 점으로 작용한다. 사적 모임에서는 공통 관심사를 나누거나 친목을 다질 때 좋은 소재 거리가 되며 취업에서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과 부합할 수 있다는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 분명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할 것이다.
미디어 속 여행을 떠난 주인공들을 보면 하나같이 여행 이전과 이후의 삶이 달라진다. 어떤 이는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대화에서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고 또 어떤 이는 아예 여행지에서 눌러 살며 인생2막을 열어간다. 또 어떤 이는 여행지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여행을 다녀온 나 역시 이들처럼 어떻게서든 하나의 깨달음을 얻어야 하고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 다녀온 여행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막 여행을 시작하던 20대 초반에는 여행이 즐겁지 않았다는 점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기 쉽지 않았다. 대학생 시절, 필자의 대학 동기가 처음 홀로 유럽 여행을 떠났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처음인지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막상 도착하니 그렇게 외로웠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몸이 아파 제대로 즐기지 못한채로 돌아왔는데, 한동안 이런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남들은 혼자 잘만 다녀오는데 나는 왜 이럴까?’ 나홀로 여행을 즐기지 못했던 본인의 모습에 꽤 오랫동안 자책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여행을 즐기지 못했다는 점만 마주해도 연약한 상태에 빠진다.
앞서 여행을 좋아하고 자주 다녔다고 말했지만 필자는 결코 여행 자체를 순수하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지루한 현실을 피하기 위해 여행지로 떠났고, 공허한 마음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도장깨기처럼 여행 횟수를 늘려 나갔다. 일상의 무료함, 공허함과 같은 개인적 문제를 여행 횟수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그시절 필자는 알지 못했다. 물론 실제로 여행지에서 즐거운 추억을 쌓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삶의 지혜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여행은 여행일 뿐. 내가 지니고 있는 삶의 문제를 환기시켜 줄 수는 있지만 완전히 해결시켜주지는 못한다. 내면의 문제를 안고 끙끙거리며 살아가지만 여행을 좋아한다는 점 하나만으로 주위 사람들은 필자를 퍽 나이스한 사람으로 바라봐준다. 그리고 필자는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인줄로 알고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의 모든 순간이 즐겁지만은 않을 수 있는 사실을 쿨하게 받아들이는데에 필자 역시도 긴 시간이 걸렸다.
혹 필자와 같은 생각을 하거나 했던 사람이 있다면, 나의 가치는 여행 여부에 따라 갈리는게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고 싶다. 여행이 일상의 짐들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지만 마음 속 짐은 내가 대면하기 싫었던 문제를 하나하나 마주하는 일상 속에서 해소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여행을 도피처가 아닌 여행 그 자체로 받아들일 때 진정한 여행의 묘미가 시작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지만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는 궁금증을 가진다. 그리고 당사자는 그 부분에 대해 꽤 정성을 들여 설명해야 한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거나 많이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소수이자 어떤 의미에선 약자에 속하는 경향이 있는듯하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말하듯 싫어하는 점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여행 외에 다른 곳에서도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멋있는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