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재난

[MZ세대의 촌철살인] 이불 밖이 위험한 시대의 도래... 공동체로 돌아와야 한다

한국재난뉴스 2023. 8. 2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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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흉흉한 소식이 들린다.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이후로 그 주 주말에만 전국 곳곳에서 칼부림 예고글이 줄을 이뤘다. 이후 잠시 소강상태에 머무는 듯 했으나 신림동에서는 공공장소에서의 성폭행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그리고 바로 어제, 비슷한 수법의 범죄가 전주에서는 미수에 그치기까지 했다. 평일 저녁 시간대에 사람이 많은 강남역 일대를 걷다 보면 무장한 경찰들을 마주친다. ‘이불 밖이 위험하다’는 말은 추운 겨울, 따뜻한 침대에서 귤이나 까먹을 때 쓰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 표현이 이토록 피부에 와닿기는 처음이다. 문득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 감사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일 내가 어떻게 되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허무함을 견디지 못하겠다.



우리는 재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내 삶에 어떤 일이 들이닥칠지는 모르겠으나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기 마련이다. 내게 그 상황이 닥쳤을 때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결과를 뒤엎을만한 대단한 효과를 지닌 액션을 취할 수 있을까. 온전히 홀로 감당해야 하는 위기상황을 떠올리면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도 한정적일 것 같아 무기력감을 느낀다.

 


흉기 난동 사건 이후 호신용 무기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어느 지하철역에서는 호신용 스프레이가 가득 담긴 바구니가 등장했다고도 한다. 위험할 때 쓰라는 나눔의 몸짓이다. 이 호신용 무기가 해소책이 될 수 있을까.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우린 이렇게 연약한 삶을 살아간다. 이런 세상 속에서 어떻게 하루를 잘 살아내야 할까.



두려움에 벌벌 떠는 삶이 건강하지 않은 방식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런 삶에 ‘살아간다’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디스토피아적 재난 상황을 그린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국 ‘상생’이었다. 혼자만, 우리만 잘되길 원하는 삶 속에서 유토피아는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연대되어 있는 공동체 안에서 살인과 분노가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위기를 홀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은 막막하지만 이 어려움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면 든든하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막막한 상황과 이겨낼 수 있는 상황은 한 끗 차이인 것이다.



어떤 것이든 극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면 그 안에서 각종 폐해를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우린 지금 개인주의의 폐해를 경험하는 중이다. 분노를 해소할 창구가 없어 속으로 꾹꾹 삭이다 결국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표출해버리는, 사회 속 어느 누구도 의지할 수 없는 상황. 이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이제 다시, 공동체로 돌아올 시점이다.



원본: https://www.h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