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최근 이직을 했다. 이번으로 무려 세 번째 직장에 들어섰는데, 각각의 직장 분위기가 정말 달랐던지라 매번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을 하기 위해 꽤 신경을 많이 썼던 바 있으며 현재도 그렇다. 첫 번째 직장은 1년차 스타트업이었는데 이르면 7시, 늦으면 10시, 더 늦으면 12시까지 매일 야근을 했다. 주말에도 계속 일 생각을 하며 워커홀릭으로 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 번째 직장도 스타트업이었는데, 기대하던 일이 내게 주어지지 않아 빠르게 관뒀으니 더 이상의 언급은 생략한다. 그리고 최근 들어선 세 번째 직장. 이곳은 소위 말하는 ‘개꿀’ 직장이다. 6시 1분 땡 하자마자 모두가 신속하게 퇴근한다. 1분은 최소한의 예의인 셈. 한 번은 6시 20분까지 남아 있었는데, 이사님이 대뜸 “이대리, 무슨 일이야?”라며 왜 퇴근을 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물어보셨다. 그 이후로는 혼자 남아있는 것이 부담스러워 강제로 퇴근을 한다.
세 직장 중 어느 직장이 좋냐 물어본다면 당연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일 것이다. 워라밸이 보장되서냐고 묻는다면 당연. 두말하면 입 아프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일 야근했던 첫 번째 직장에 얼마 버티지 못했냐고 묻는다면 아니. 직원수 10명이 채 되지 않았던 때에 입사하여 40명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일했으니 내 직장 경력 중 가장 길게 일한 셈이다.
두 번째 직장을 제외하고, 완전히 다른 직업 문화를 지닌 두 곳을 단시간 내에 경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곳에서 모두 즐겁게 일했었고, 지금도 즐겁게 일하고 있다. 첫 직장에서 매일을 야근할 때는 새벽 2시에 자면서도 입가에 웃음을 가득 띠며 잠을 잤다. 매일매일 무언가를 해냈다는 뿌듯한 성취감이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지금은 매일 저녁 6시에 싱글싱글 웃음을 띠며 퇴근한다. 오늘은 집에 가서 무엇을 할지, 누구를 만나고 갈지 생각만해도 짜릿하다.
하지만 동시에, 과거 지독한 책임감에 몸서리치며 일했던 만큼, 불만이 스멀스멀 생기기 시작하는 중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이따금씩 성과가 만족할만큼 나오지 않을 때면 자책을 그리도 많이 했었다. 내게 주어진 자율성만큼 책임도 많이 따랐기 때문이다. 6시에 퇴근하면서도 속으로는 한창 배울 것이 많은 연차에 칼퇴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 라는 생각에 찜찜함을 떨쳐버리기 힘들기도 하다. 예전만큼의 열정이 덜하기에, 일이 썩 재미있지도 않다.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직장에서의 만족도는 내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다소 꼰대 같은 뻔한 말이다.
지난달 기준, 일도 구직 활동도 하지 않은채 쉬고 있는 20-30대 청년층이 35만 70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는 같은 달보다 1만 2000명 증가한 수치이다. 이들을 비난하려는 요량이냐고? 절대. 필자에겐 그럴 자격이 전혀 없다. 필자 역시 첫 번째 직장을 관두고 꽤 긴 공백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필자가 관뒀을 무렵, 두 명의 선임이 이렇게 조언을 했다. 지금 이 시기를 잘 보내라고. 이때까지의 경력? 다 필요 없고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아 깊게 한 번 몰두해보라고. 다양한 분야로의 경험이든 한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경험이든 무엇이 됐건 그 경험이 앞으로의 필자의 인생을 바꿀 것이라고. 자기는 실제로 그랬다고. 신기하게도 각기 다른 두 명에게서 똑같은 조언을 연속으로 들었다.
하지만 그때 당시의 필자는 빠르게 취업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그 시기를 마음껏 활용하지 못했다. 지금 쉬고 있는 청년들에게 이 글이 닿을 수 있다면 제발 그것들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필자는 아마 이 직장에서의 퇴사 결심이 서야 가능할 것 같으니 앞으로 1년 뒤에나 가능할 것 같다. 그러니 그 사이에 필자보다 먼저 그 길을 경험한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난 나보다 앞서간 이들을 존경하며 열심히 뒤따라갈테다. 1년이 지나도 필자는 여전히 ‘젊다’는 MZ 세대일테니까.
다만 인생을 뒤흔들 계기를 쫓기보다 그저 변동 없는 업무 속에서 더 좋은 조건들을 찾아 쉬고 있는 청년들이라면, 어쩔 수 없다. 필자와 함께 몸으로 부딪히는 수밖에. 분명한 것은, 어떤 곳을 가든 단점이 눈에 더 많이 들어올 것이며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쌓인 또 하나의 경험으로 내게 더 알맞은 조건이 무엇인지 알아갈 수 있다. 그것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값어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어떤 환경이건 그 안에서 장점을 발견하는 혜안을 얻게 된다면 그만큼 귀한 지혜를 얻게 되었으니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