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재난

[MZ세대의 촌철살인] ‘노키즈존’에 출입하지 못했던 아이가 자라서 ‘잼민이’가 되어버린 건에 대하여

한국재난뉴스 2023. 5. 1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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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주식도 못하고 술도 못한다. 이런 필자에게 세상은 ‘주린이’ ‘알린이’라는 별명을 붙인다. 무언가에 초보이거나 혹은 미숙하다는 의미를 더할 때 대상의 앞글자와 어린이의 ‘린이’를 붙여 ‘O린이’라고 부른단다. 하지만 이 표현은 어린이를 미숙한 존재, 서툴고 귀엽기만한 존재로 한정한다는 점에서 차별 논란이 됐던 적이 있다. ‘어린이’라는 단어는 1920년 당시 ‘아해놈’이라고 불리던 아이에 존중을 담은 표현으로 만들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O린이’는 표현은 아이를 존중하는 의미가 퇴색된 표현으로도 볼 수 있겠다. ‘O린이’라는 표현은 여전히 각종 커뮤니티에서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으며 심지어 도서 제목에 사용되는 경우도 포착된다.



돌이켜보면, 어린이 혹은 청소년을 얕잡아 이르는 표현은 이전부터 항상 존재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초딩’이다. 필자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누군가 필자더러 초딩이라고 부르면 발끈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단어가 단순한 초등학교 학생이 아닌, 수준이 저열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 어린 나이에도 충분히 체감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생긴 신조어 ‘잼민이’,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 ‘급식’이라는 표현도 비슷한 표현의 연장선이다. 학생이었던 필자가 성인이 된 이후까지. 어린이를 얕잡아 이르는 표현은 외형만 변했을 뿐,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아이를 낮춰보거나 더 나아가 기피하는 경향은 비단 단어뿐만 아니라 일상 공간에서도 흔히 관측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키즈존이다. 물론 업주의 입장에선 공간 운영에 차질이 생길 정도로 소란을 피우는 사람에게는 제재를 가할 수 있다. 다만 그 제재 대상을 아이와 부모로 한정하지 않고, 소란을 피우는 모든 사람으로 확장해야 한다. 문제에 책임을 지지 않는 특정 부모의 케이스로 인해 아이가 있는 가정들이 제한 받는다는 점은 또 다른 차별을 양산할 우려가 있다.



우리 모두 서툴렀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아이였던 때가 있다. 그 어린 시절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봐 준 어른들 덕분에 무탈하게 성장한 점도 분명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노키즈존에서의 배척, 어린이에 대한 차별을 담은 단어의 홍수 속에서 우리 사회는 저출산의 심각성을 말하고 있다. 한창 호기심이 많고 아직은 절제가 힘든 아이들을 사회가 품어주지 못한다면 저출산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지 못할 것이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방문하는 장소에서 아이들을 배려하고 품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원본:https://www.h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