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재난
[문화인류학으로 읽는 세상만사] 전세 사기라는 위험의 불평등
한국재난뉴스
2023. 5. 12. 10:52
728x90
전주대학교 교수ㆍ인류학
한국재난뉴스 객원 칼럼니스트
2022년 12월 수천 채의 깡통주택을 소유한 소위 ‘빌라왕’ 때문에 수백 명의 세입자가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전세 사기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빌라왕이 공인중개사를 끼고 벌인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범죄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세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전세라는 독특한 주택 임차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다른 나라는 대부분 월세로 집을 임차하고 있어 그들에게 전세 제도를 설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전세 제도는 집주인에게 세입자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지 않는 대신 그 집에서 생활하는 구조이다. 집주인의 입장에서는 집의 매매가격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높은 전세를 받을 수 있으므로 전세 자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고, 심지어 다른 집을 추가로 매입할 수도 있다. 문제는 세입자가 전세 보증금을 되돌려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는 무수히 많다. 우선 전세 시세가 내려갈 때이다. 대부분 집주인은 다음에 전세로 들어올 사람으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받아 기존의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금을 반환해 주는데 전세 시세가 내려가면 다음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으로는 기존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을 반환하기 어렵게 된다. 더 나쁜 경우는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이 집주인의 사정으로 경매에 넘어가는 경우이다. 국세 미납이나 은행 대출금 미반환 등으로 집에 경매에 넘어가면 시세보다 저렴하게 경매가가 결정되고 국세, 은행 담보 등을 먼저 정리하게 되면 세입자가 돌려받을 수 있는 전세 보증금은 보잘 것 없이 작아지게 된다. 심지어 의도적으로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을 노리고 사기로 전세를 놓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나 세입자는 치명적인 재정적 타격을 입게 된다.
전세는 개인간의 금융거래이다.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은 나중에 빌려준 돈을 회수하기 위하여 돈을 빌리는 사람의 재정상태, 직업, 신용 등을 검증하며 돈을 돌려받기 위해 재산의 담보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세 보증금이라는 거액을 집주인에게 빌려주는 세입자는 ‘을’의 입장이어서 집주인에게 이런 내용을 요구하기 어렵다. 원천적으로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안전장치가 부실한 것이다. 세입자는 집의 매매가가 전세보다 높기 때문에 언제든지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집값은 언제든지 하락할 수 있고, 집주인의 재정상태가 악화될 수도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전세 피해가 사회초년생이나 저소득자에게 집중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다세대 주택이나 빌라와 같은 주거시설은 아파트에 비해 주택 가격이 낮아 전세 보증금도 아파트보다는 낮다. 그러나 이런 주택은 동시에 주택 가격이 불안정하며 집 주인의 재정상태가 건전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다소 위험부담이 있지만 이런 주거시설은 전세 보증금이 낮기 때문에 사회초년생이나 저소득층이 주로 이용한다. 사회적 약자인 사회초년생이나 저소득층이 전세 보증금 반환이 어렵고 전세 사기를 당할 위험이 높은 주거시설을 주로 이용하는 것이다. 전세 사기라는 사회적 위험도 사회적 약자들에게 집중되어 나타나는 셈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장기적으로는 월세로 전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주택을 임차해서 사용하기 위하여 집주인에게 거액의 전세 보증금을 무이자로 빌려주는 방식보다는 매월 사용료를 지급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산 축적이 미흡한 사회초년생들이 전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대출 없이 매월 소득에서 일정 금액을 주택 사용료로 지급하는 방식이 더 나은 방식일 수 있다. 전세 제도를 유지한다면 건설회사나 주택공사와 같은 신뢰할 수 있는 기관이 주택 임대사업을 더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단기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전세 자금을 마련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 현실에서 전세 보증금마저 반환받지 못하는 비극이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원본:https://www.h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6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