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재난
[문화인류학으로 읽는 세상만사] 음주운전의 비극
한국재난뉴스
2023. 4. 13. 15:12
728x90
전주대학교 교수ㆍ인류학
한국재난뉴스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8일 대전의 스쿨존 지역에서 9살 배승아 양이 음주운전을 한 60대 남성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이 운전자는 노인복지관 구내식당에서 음주를 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 교차로에서 급회전을 하다가 중심을 잃고 중앙선을 넘어갔으며 인도에 있던 어린이들을 덮쳤다. 다음날인 9일 하남시에서 분식집을 하던 40대 남성이 중앙선을 침범한 승용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사고를 낸 승용차 운전자는 면허정지 수준의 혈중알콜농도를 보였고 사고를 당한 분식집 사장은 세 자녀를 둔 가장이었다.
스쿨존 교통사고와 음주운전 사고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스쿨존 교통사고는 2020년에 483건, 2021년에는 523건, 2022년에는 481건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2022년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자도 171명에 이르렀다. 민식이법의 제정 이후에도 스쿨존 교통사고는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음주운전에 대한 기준을 강화하여도 음주운전 역시 줄어들지 않고 있다. 스쿨존 교통사고와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 강화로는 문제 해결에 한계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술을 마신 사람에게 음주운전은 강력한 유혹이다. 술을 조금 마셨을 때는 이성이 있어 운전을 자제할 수 있지만 과하게 마시면 자제력을 잃고 운전대를 잡을 가능성이 더 커진다. 일부 남자들에게 음주운전은 때로 남성다움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음주운전을 하였지만 단속에 걸리지도 않고 사고도 내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였다는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무모함 때문에 피해자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지만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음주 운전자는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음주운전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음주운전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지우기 때문이다. 음주운전이 위험하다는 홍보를 아무리 하여도, 그리고 처벌을 아무리 강화하여도 내가 책임지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음주운전을 조장하게 된다. 일본은 음주운전에 대해 주류를 제공한 사람은 물론이고 함께 술을 마신 사람에게도 공동으로 책임을 부여한다. 주점이나 식당에서 술을 마시면 술을 제공한 주인은 반드시 대리운전자를 불러주어야 한다. 음주운전 사고가 나면 함께 술을 마신 사람들이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시스템 하에서는 술을 마신 뒤 운전을 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기술적으로 음주운전을 방지하는 방법도 있다. 1986년 미국에서 처음 도입된 뒤 호주, 캐나다, 영국 등에서 도입하고 있는 ‘시동잠금장치’가 그것이다. 시동잠금장치가 장착된 차량은 운전자가 장치에 입김을 불어 음주 상태가 아닌 것이 입증되어야 시동이 걸리는 장치이다. 우리나라 국회에도 이와 관련한 법안이 상정되어 있지만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 장치를 부착하기 위한 비용 문제로 의무화를 반대하는 민원도 있다. 그렇지만 음주운전 사고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는 매우 유력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음주운전은 지방과 소도시에서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전체교통사고 중 음주운전 사고가 차지하는 비율은 전국 평균 7.3%이지만(2021년 기준)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대도시는 평균보다 낮고, 강원도와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는 모두 평균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이는 대중교통 시설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중교통 수단이 잘 정비된 지역보다 그렇지 못한 지역에서 음주 후 자차 운전을 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음주운전은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 기반 시설의 확충문제이기도 하다.
음주운전은 사고의 위험을 높이며 피해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준다. 음주운전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의무는 일차적으로 개인에게 있다. 그러나 자동차에 시동제한 장치를 부착하는 일이나 주류 제공자와 동반 음주자가 공동체적 책임을 지는 일, 그리고 대중교통 확충이라는 사회시스템의 개선 등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음주 운전자에 의해 예측하지 못한 사고를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원본:https://www.h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472